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6세대 책임론 (문단 편집) === [[능력주의]]의 위험성 === "능력이 없으면 나가라"처럼 청년층의 자리를 달라는 생각 자체는 너무 위험하다. 청년층이 꼭 능력이 있으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논리는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가 제일 좋아할 생각이다. 근로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주체는 경영자이기 때문에, 월급이 올라가면 능력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해고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청년층과 중년층의 대립은 사회적 불안으로 야기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著)'에서는 단순한 세대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대한 사회적 불안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강사는 토론 주제로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들었다. 2004년 채용 당시 "KTX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입사했다."는 승무원 측과 "노동자들은 분명히 계약직임을 알고 들어왔다."는 사측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던 문제로, 이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자, 2006년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정규직 직접 채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사건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강의 제목인 '인권과 평화'에 걸맞게 사측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얼마나 침해하는지에 대해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학생들은 이 사건을 한마디 말로 일축하고 있었다고 한다.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쉽게 말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나빠. 하지만 그렇다고 특혜를 받는 것도 나빠!"란 논리. 2000년대부터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서 기간 만료 및 기타 이유로 [[비정규직]]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것을 '특혜'라고 볼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특혜가 아니라 애당초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해고를 했다. 이러자 승무원들은 오랫동안 법적 투쟁을 했지만, 패소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날먹|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한다]]'는 학생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던 나 자신을 보게 됐다.'''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심어 놓은 건 도대체 누구일까. 저자는 그것이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사회현상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청년층들의 불안을 그대로 반영한다. 청년층은 청소년 시절 극한의 입시 관문을 뚫고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 그냥 사회에 한발짝을 내딛었을 뿐이다. 이때 청년층은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며 오히려 타박만 하는 586 세대에게 실망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나중엔 적대감을 표출하게 된다. 윗세대의 지시대로 했지만, 결과는 [[현실은 시궁창]]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애당초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말대로만 움직일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양육법이 아니며 이건 부모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수직적인 갑을 관계로 생각하고 자식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요즘 시대는 사회상의 변화가 아주 빠르기에 자식이 부모가 제시한 길만을 유일한 정답이라 믿으며 종착점까지 죽어라 달려도 자식의 눈앞에는 달콤한 성공이 아닌 수많은 갈림길만 기다릴 뿐이다. 이러면 부모와 자식 모두 인지부조화에 걸려서 서로에게 잘못을 돌리게 되고 가정불화가 극에 달해 나중에는 자살과 존속범죄로 악화되어 가정이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다. [[이은석(범죄자)]]이 좋은 예다.] 그리고 자기와 다르게 편하게 취직한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표출되었다. 과거엔 대학도 얼마 없었고 대학만 가면 대기업에서 거의 모셔가는 수준이라[* 심지어 현재는 사실상 고시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과 교사조차 지금보다 취업하기 쉬웠다. 그 당시엔 회사나 공장에 들어가지 못한 잉여들에게 추천하는 직업이 공무원이었다고 하니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이를 보고 자라온 기성세대는 자식에게 대학만 가면 성공한다고 조언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학만 가면 장땡이 그저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는 점이 이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다. 쉽게 말해, 기성세대가 시대상의 변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젊었던 시절의 그러니까 과거에나 적용이 가능한 조언을 해버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50대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했던 방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젊은 날처럼 부당함에 항거하는 것은 더 이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설령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취직하지 못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쪽이 바로 중장년층이기 때문이며[* 이에 따른 갈등 문제로 인해 존속 살해도 일어나는 판국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4&aid=0003487838|참조]],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1115001008&wlog_tag3=naver|#]]] '그러다 나까지 위험해지면 어쩌지'라는 사고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양쪽 다 피해자이지만, 원인도 해결도 너무 복잡하고 중구난방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급격한 성장이다. 서양의 경우는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국가가 현대화되기 까지의 시간도 길었기 때문에 세대갈등에 완충작용이 될 수 있었고, 기성세대들이 신문물에 적응하기에도 비교적 수월했다. 반면 한국은 서양권 선진국들이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년씩 걸린 현대화를 무려 40여년만에 압축해서 일궈냈고, 이러다보니 변화하는 시대상에 기성세대가 적응에 실패해버린 것이다. 쉬운 예로, 시대상만 따지자면, 한국의 경우, 할아버지 세대는 서양의 절대왕정 세대와, 아버지 세대는 시민혁명 내지 산업혁명 세대와 대비될 수 있다. 서양으로 치면 한 세기 씩이나 차이가 나 웬만해서는 접점이 있을 수가 없는 세대차이가 한국에서는 무려 두 세대에 걸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문서의 [[한국인#빠른 경제 발전의 그림자|빠른 경제 발전의 그림자]] 문단에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 결국 이런 혼란에서 각 연령층은 자기네의 안전만을 원하게 되고 이는 특정 연령층의 안위를 위해 다른 연령층의 희생을 강제하는 형태로 이어지므로 결국 극심한 반목과 배척으로 돌아온다. 또한 이러한 능력주의의 논리로, 청년층 역시 능력부족으로 해고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이때 과연 순순히 해고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